경제와 금융

조선의 인플레이션-흥선대원군의 당백전

IVOPRO 2024. 1.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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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미국에서 1만 km 가까이 떨어져 있지만 화폐 문제로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백전 발행의 배경

조선 말 한반도에는 은광이나 구리광이 귀했고 때문에 화폐발행으로 조선 내 모든 통화량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쌀과 면포가 보조화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값싸고 질 좋은 면직물이 대량 생산되고 이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습니다. 조선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로 인해 면포의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화폐 시스템을 떠받드는 요소 중 하나인 면포 값이 폭락하니 화폐 발행으로 통화량을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중요한 세원이었던 토지에서의 세수 확보에 실패한 대원군은 경복궁 증축사업 등 재정 확보를 위해 당백전을 발행했습니다. 이때, 구리 값의 상승으로 화폐 주조에 어려움이 생겼고, 조선 후기의 구리 값 상승으로 제조 원가가 급상승했습니다. 그 결과상평통보의 100배 액면가를 가진 상평통보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당백전의 문제점

하지만, 당백전의 구리 함량은 상평통보의 100배보다 훨씬 낮아서 상인들과 주막의 아줌마들이 당백전으로 거래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물물 교환이 다시 유행하게 되었고, 백성들도 남몰래 땅을 파서 상평통보를 숨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당백전은 상평통보를 몰아내고 상평통보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1866년 12월에는 한석의 일곱 여덟 냥 하던 쌀값이 2년 후에는 마흔넷 45냥으로 6배 올랐고, 월간 물가상승률이 7.5%에 달했습니다. 1678년부터 1866년까지 188년 동안 쌀값은 2배 올랐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당연히 실물인 쌀을 팔지 않았습니다. 대원군은 6개월 만에 당백전 통용을 폐지했지만, 이미 조선의 경제는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당백전 발행의 영향

결과적으로 고종의 친정이 시작된 다음에는 군비가 축소되어서 신미양요 때 입은 천문학적 규모의 화기 손실을 보충할 여력도 없었으며, 무너진 성곽을 재건하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했습니다. 게다가 재정 부족으로 인한 구식 군대 임금체불로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청에 대한 예속 상태가 이어지면서 외국이 조선을 무시하는 심각한 외교적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발행은 실물의 가치와 국가의 보증 가능성을 무시하고 화폐를 발행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사실 지금 전 세계 정부도 이와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달러를 제외하면 사실 가치가 없는 종이 화폐를 보증 가능성을 무시한 채 미친 듯이 찍어내고 있습니다. 고금리로 인한 파산을 막기 위해서요. 계속해서 중앙은행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게 된다면 결국 인플레이션은 막지 못하고 파산만 증가시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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